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특집2

신자유주의와 대학 구조조정

알렉스 캘리니코스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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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식경제” 이데올로그들이 간과하는 더 커다란 불확실성이 있다. 기업과 전체 경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들은 이들의 활동과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연관이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1990년대 말의 신경제 호황 때 IT와 통신 산업에서는 수익률에 대한 현실적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막대한 투자 붐이 일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광케이블이 약 6천2백만 킬로미터나 깔렸는데, 이는 지구를 1천5백66번 감을 수 있는 길이였다.13

이런 과잉투자는 결국, 파산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아주 흔한 일이었다. 오늘날 많은 IT·통신 기업들은 여전히 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하고 있는 반면, 흔히 “구경제”라고 부르는 기업들, 특히 석유·천연가스·철강·광산 관련 기업들이 최근 국제 원자재 수요 증대에 따른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리며 번창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지식경제론에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10년 전의 상황은 정반대였고, 그래서 지식경제론이 처음 대두될 수 있었다. 이는 자본주의가 경쟁이라는 맹목적 과정, 즉 그 결과를 통제할 수도 없고 (자세히) 예측할 수도 없는 맹목적 과정에 의해 추동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지식경제론자들뿐 아니라, 자기 대학을 “세계 명문” 따위로 만들겠다고 외치는 대학 부총장들도[2] 간과하는 경쟁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경쟁에는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다는 점이다. 모든 대학이 “세계 명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패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기업 간 경쟁에서 패자는 다른 기업에 인수되거나 퇴출되고 그 기업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대학 간 경쟁에서는 패배하더라도 (아직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끌어모을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어 교원과 학생 들의 처지가 열악해진다.

지식경제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극히 일부와 장밋빛 그림만 보여 주기는 하지만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세계 자본주의의 현 시대는 격렬한 국제 경쟁의 시대라는 점이다. 개별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여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계속 받는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제한돼 있으므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더 발전된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을 기획하고 운용할 고숙련 노동자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데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쟁 논리는 경제 전체에도 적용돼서 각국은 자국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경쟁국의 그것과 항상 비교한다. 아시아의 저비용 신흥 경제 대국인 인도와 중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업주와 노동자 들은 모두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압박을 계속 받는다. 고등교육의 신자유주의화 때문에 이 경쟁 논리가 대학의 운영 방식에도 깊숙이 내면화됐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신자유주의 덕분에 대학은 증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점차 사활적으로 중요해지는 연구를 최대한 저렴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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