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특집2

신자유주의와 대학 구조조정

알렉스 캘리니코스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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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분은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내재한 이중적 경향의 효과 때문에 사실상 흐려지고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와 대학이 점점 더 자본주의 상품 논리에 종속되는 경향이다. 이런 상품 논리는 덩치는 크고 “경쟁력”은 없는 학교들을 훈련소처럼 만드는데, 이 훈련소는 노동시장을 위한 공급자의 지위(그다지 부럽지 않은)와 똑같은 논리에 점점 더 지배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과 특히 대학생의 돈벌이 활동이 증가해 학생과 젊은 노동자의 차이가 줄어드는 경향이다.
이런 활동의 특정 분야나 부문(패스트푸드, 콜센터, 백화점, 슈퍼마켓 체인점)은 전문화하기도 한다. 여기에 유별나게 많은 단기 계약직, 사기성 인턴 기간, 프랑스에서 특히 18~16세 청년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실업 기간 등을 더하면 이런 노동인구의 재프롤레타리아화라는 거센 움직임을 상징하는 다양한 직종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부유한 가정 배경의 소수 청년과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다수 사이의 차이는 먼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이런 “거대한 전환” 덕분에 (1968 항쟁 때와 비교하면) 학생과 노동자의 연계가 더 쉬워졌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이 연계가 “유기적” 성격, 즉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의 동맹이나 연대가 아니라 공동 투쟁 건설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학생 운동 자체의 주된 양상이 노동계급 투쟁과 가까워진다는 점도 설명된다. 즉, 노동 현장이자 도구(그리고 노동을 준비하는 과정)로 여겨지는 학교를 “봉쇄”(“점거”가 아니다. 둘은 흔히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도 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흥미롭다)해서 생산 과정(강의, 시험)을 중단시키려 한다는 것이다.71

학생운동의 급진적 자극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그들이 정부와 CPE 회생 협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영국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앞에서 살펴봤듯이, 학생들이 불안정 노동에 참가한다고 쿠벨라키스가 묘사한 경향은 영국에서도 광범한 수준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사례는 영국의 학생과 교원 들에게도 중요하다. 프랑스의 투쟁이 유럽의 다른 곳, 즉 그리스에서도 2006년 5~6월에 학생들이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으며 점거 투쟁을 벌이도록 고무해서 우파 정부의 대학 사유화 계획을 연기시켰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교수들 사이에서 더 전투적인 노동조합 운동이 발전해서, 대학교원협의회와 전국고등교육교원협의회가 통합해 대학노조가 출범했다. 첫 번째 시험대는 2006년 봄에 찾아왔다. 당시 통합을 앞둔 두 노조는 추가등록금에서 생긴 돈으로 비교적 낮은 교수 봉급을 벌충해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대학 당국과 정부에 요구하며 함께 시험 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대학 당국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시험 거부는 교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많은 대학들이 쟁의 행위에 참가하면 봉급을 삭감하겠다고 협박했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었다. 교수는 서비스 노동자(그 노동의 혜택이 서비스 수용자에게 직접 전달된다)이므로 쟁의 행위는 언제나 어렵다. 가장 효과적인 쟁의 행위는 강의와 채점을 방해하는 것인데, 이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학위를 받지 못하게 해서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이 말은 교원들이 쟁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교원들은 재빨리 전면 파업이나 시험 거부에 나서서 사용자들을 최대한 압박해 적절한 합의에 이르도록 강제하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 거부를 둘러싼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전국대학생연합 지도부는 지지했지만, 시험 거부 반대 운동을 벌인 일부 학생단체들의 압력을 받았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반영한다. 하나는 전국대학생연합 지도부가 학생들의 이익(예컨대 추가등록금 반대)을 옹호하는 대중 운동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점이다. 집단 행동이 효과적이라는 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일부 학생들이 자신을 개별 소비자로 여기면서 교수 노조에 반대해 자구책을 찾게 되는 일이 불가피해진다.

둘째로, 쿠벨라키스가 강조한 사회적 전환의 다른 쪽 측면이 있다. 학생은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이다. 대다수는 어느 정도 숙련된 화이트칼라 직업을 갖게 되지만, 일부는 찬란한 미래를 보장받는 특권층 배경을 갖고 있다. 나머지 상대적 빈곤층 가정 배경 학생들도 여전히 소수 엘리트들이 차지하게 될 보수가 매우 좋은 직업, 특히 런던 금융가의 직업을 갈망한다. 계급 구조의 상층으로 올라가거나 상층에 머물기를 바라는 학생들은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집단 행동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오히려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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