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특집2

신자유주의와 대학 구조조정

알렉스 캘리니코스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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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수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혐오하는 변화를 시행하는 데 일조하면서 심각하게 사기저하했다. 교수들이 여기에 동참한 밑바탕에는 대처의 유명한 말 “대안은 없다”는 가정이 깔려 있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개혁”에 저항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정을 받아들이면, 최악으로는 저쪽 편으로 전향해서 지금 대학을 운영하는 유력자 무리에 끼거나, 기껏해야 승진이나 조기 퇴직 같은 개인적 해결책을 추구하게 됐다.

그러나 대안은 있고, 저항은 쓸데없는 짓이 아니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저항 운동이 떠오르면서 분명해졌다. 1994년 1월 멕시코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봉기 - M21], 훨씬 더 큰 규모였던 1999년 11월 시애틀 시위와 2001년 이탈리아 제노바 시위가 그 예다. 이런 운동들이 가장 광범하게 모인 세계사회포럼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라는 구호를 유행시켰다. 이 구호의 뜻인즉, 우리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논리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2002년 11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1차 유럽사회포럼은 당시 임박했던 [미국의 - M21] 이라크 공격에 반대해 이듬해인 2003년 2월 15일 국제행동의날을 호소하면서 운동의 시야를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확대했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은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투쟁이 발전한 덕분에 더 가시화됐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빈민들의 지지를 업고 석유 수익을 진정한 사회 개혁과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데 사용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던 전임 대통령들을 날려버린 2003년 10월과 2005년 5~6월 두 차례 빈민 항쟁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해서, 외국의 다국적기업에 매각됐던 석유 기업과 가스 기업을 재국유화했다.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2006년 3~4월 프랑스에서 벌어진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멋진 항의 운동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으며 최초고용계약법CPE 제정을 좌절시켰다. 최초고용계약법은 사용자가 고용 계약 2년 미만의 26세 이하 노동자를 사전 통지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이었다. 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훨씬 더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우파 정부의 조처에 맞선 이 항쟁의 특징은 학생과 노동자의 관계가 1968년 5~6월 학생·노동자 대항쟁 때보다 훨씬 더 밀접해진 것이었다. 스타시스 쿠벨라키스[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교수 — 옮긴이]는 “이번에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청년들은 노동계의 일부로서 행동했다”고 말했다.70

이런 변화는 전통적인 기능 구분, 즉 고등학교와 대학은 교육으로 노동인구를 재생산하고 작업장은 상품을 생산한다는 구분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쿠벨라키스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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