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특집2

신자유주의와 대학 구조조정

알렉스 캘리니코스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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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화와 불안정성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으로 교원과 학생의 처지가 모두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화”와 “불안정성.” 이 단어들은 과장인 듯도 하지만, 사회적·경제적 현실을 말해 준다. 프롤레타리아화는 임금노동자(자기 노동력을 시장에서 팔아야 하고 직장에서는 경영자의 권력에 종속되는)로 전락하는 과정이다. 불안정성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점점 더 많은 노동자와 예비 노동자들이 겪는 불안한 고용 상황을 말한다. 즉, 임시직이나 계약직이나 어쩌면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또는 투잡·쓰리잡을 하면서 늘상 취업과 실업의 언저리를 맴도는 것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교수들은 피고용인 중에서 비교적 특권적인 집단이었다. 교수들은 전문직 지위와 높은 봉급 수준을 누렸다. 교수들은 업무 자율성도 상당했는데, 봉급쟁이치고는 드물게 자기 시간을 관리하며 강의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다. 교수들이 흔히 대학을 운영하기도 하는 탓에 이런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조건들이 대학을 이해관계가 동일한 구성원들의 공동체로 보는 생각의 물질적 근거였다. 그런 조건들은 또, 오래된 대학들에서 대학교원협의회AUT, Association of University Teachers 소속 교수들이 전통적으로 대학교원협의회를 노동조합이 아니라 전문가 단체로 보는 견해로 나타났다.

이런 특권적 지위는 19세기 말부터 대학이 하던 구실을 반영했는데, 당시 대학들은 여전히 극소수의 젊은 남성을 주로 가르치는 현대적 기관으로 발전했다. 옥스브리지는 세계 제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상층 중간계급 전문가들과 옛 귀족들을 결속시키는 기능을 맡았고, 다른 신설 대학들은 교육 체계 자체의 확장에 필요한 인력뿐 아니라 현대 산업 자본주의 경제에 필요한 연구자와 전문가도 양성했다.

심지어 고등교육을 확장하라고 조언한 1963년 로빈슨 경의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은 이 엘리트적 성격 덕분에, 사회학자 A H 핼지가 썼듯이 “대학은 자율적일 권리, 스스로 운영할 권리, 민주적 의회의 감시를 받지 않는 국가 기구들을 통해 사회적 자금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1919~89년 대학에 정부 재정을 교부하는 책임을 맡았던 대학보조금위원회UGC, University Grants Committee는 “이런 대학의 이해관계[강의와 연구에서]를 반영해 정부의 통제에 맞서 대학을 방어하면서 대학과 국가 사이에서 다리 겸 완충지대 구실을 했다.”42

핼지는 옛 교수들의 세계관(대학교원협의회가 표방하기도 했던)을 약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신사는 임금·노동시간·노동조건에 연연하지 않는다. 신사에게는 고용주도 없고, 노동조합도 없고, 협상·중재·조정 기구도 없다. 신사가 받는 것은 사례금이지 임금이 아니다. 신사는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천직을 찾는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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