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특집2

신자유주의와 대학 구조조정

알렉스 캘리니코스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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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와 기관의 순위에 따라 잉글랜드 고등교육재정지원위원회HEFCE 같은 지역별 대학 재정 지원 기구들이 각 대학에 이른바 “등급별QR, quality-related” 연구 기금을 할당한다.(고등교육에는 약어와 우스꽝스러운 관료적 용어가 너무 많다.) 등급별 연구 기금은 대학 연구 자금의 가장 큰 원천이고 대학들이 단순 교육 기관을 넘어서는 기능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정부의 대학 연구 “이중 지원” 시스템의 또 다른 한 축은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연구위원회가 특정 프로젝트에 연구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연구실적평가에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매우 많이 반영돼 있다. 교수들은 강의는 물론이고 연구를 위해서도 채용된다.(교수 봉급의 5분의 2는 명목상 연구 활동비다.) 그러면 교수들의 생산성은 어떻게 측정하는가? 산업에 비유하면 측정 가능한 물리적 생산물이 필요하다. 교수가 내놓는 가장 가시적인 “생산물”은 출판물이다. 그러나 단순히 책과 논문 수를 세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곧 분명해졌는데, 형편없는 글을 많이 쓰는 것은 꽤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실적평가는 점차 동료 평가 과정, 즉 다른 과 교수들로 구성된 패널과 서브패널들이 자기 동료의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이 됐다. 교수들은 여전히 “연구 결과 목록”을 네 개씩 제출해야 하는데, 이것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소위 “권위 있는high-rated” 학술지(대체로 미국에서 발행되는)에 등재된 것이냐 아니냐다.

연구실적평가는 점점 비용과 시간을 잡아먹는 매우 불합리한 과정이 됐다. 예를 들어, 대학들은 “비생산적인” 교수들을 명부에 올리지 않는 등 다양한 변칙을 써 대학 순위에서 밀리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그래서 일부 교원들은 “강의만 하는” 계약을 맺고 연구실적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측면에서 연구실적평가는 옛 소련의 관료적 명령 경제의 불합리성을 닮았다. 막대한 대학 예산이 연구실적평가 순위에 달려 있으므로, 대학들은 제출 서류나 논문을 조작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스탈린 체제의 기업 경영진들이 중앙 정부의 계획자들을 속이려 했듯이 말이다.

연구실적평가의 부담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2008년까지 4천5백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3월 고든 브라운은 기존의 동료 평가 제도를 폐지하고 “수치”(즉, 연구 기관들이 연구위원회한테서 받는 연구비 같은 계량적 목표)를 바탕으로 등급별 연구 기금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단순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발표했다.28

그리 되면 기존 시스템의 불합리함이 더 심화할 것이다. 즉, 연구위원회의 자금을 많이 받지 못하는 인문학이 특히 심하게 고통받을 것이다. 연구실적평가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실제로는 정부의 대학 통제 강화를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다. 대학 강의도 교육표준국Ofsted과 비슷한 노릇을 하는 우수성보증국QAA, Quality Assurance Agency의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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