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8호 2018년 11~12월호)

지난 호

특집2

신자유주의와 대학 구조조정

알렉스 캘리니코스 5 28
81 2 1
1/28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이 글의 필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학과 그 구성원들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자신의 25년 넘는 대학 교수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고도 깊이 있게 이 문제를 파헤친다. 이 글이 특수한 영국 얘기일지라도 그 보편성이 너무도 흥미롭다. 캘리니코스가 분석한 신자유주의적 영국 대학 ‘개혁’의 현실이 한국과 거의 똑같아서 무릎을 치며 빨려들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한국에서 벌어진 세 사건 — 중앙대 구조조정, 김예슬 선언, 한국의 대학사회가 증오스럽다는 유서를 남긴 어느 대학강사의 자살 — 은 한국의 대학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장이었다. 이 글은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분석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이 글은 먼저, 한국에서도 유행인 ‘지식경제’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캘리니코스는 생산성을 높이려면 고도 기술과 이를 운용할 인적 자원에 투자해야 한다는 경쟁 논리가 대학 운영에 깊숙이 침투한 결과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추적한다. 이윤 창출에 도움 되는 연구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대학과 기업은 서로 매력적인 파트너로 여겨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이다. 정부는 연구 실적을 평가해 기금을 주고, 대학 경영진은 자기 대학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려고 혈안이 된다. 경쟁력 없는 학과와 교수는 퇴출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더 높은 생산성이 요구된다. 대학은 한층 서열화되고, 대학 교원도 서열화되고, 대학 운영은 더욱 비민주적이 된다. 대학은 점점 CEO가 전권을 행사하는 기업을 닮아간다. 그 다음으로 캘리니코스는 점점 열악해지는 대학 교원·학생들의 처지와 그 변화의 의미도 상세히 다룬다. 이 글에서 묘사하는 대학 교원과 대학생의 처지는 한국과 거의 똑같다. 교수들은 전에는 피고용인 중에서 비교적 특권적 집단이었지만 지금은 소수 교수를 제외한 다수가 고급 자격증을 가진 임금 노동자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교수 1인당 평균 학생 수와 행정 업무가 늘었고, 단기계약직 교수가 증가했다. 이런 변화 때문에, 전에는 교수협의회를 전문가 단체로 봤던 교수들의 자기 인식이 바뀌고 있다. 그 결과 영국에서 대학노조가 만들어지고 교수들이 쟁의 행위에 돌입한 경험을 캘리니코스는 보여 준다. 한국에서도 국립대 법인화와 사립대 구조조정은 이런 변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오늘날 대학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교육에 투자하기는커녕 돈을 들이지 않고 대학을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그에 따라 대다수 학생들은 공부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뛰고, 등록금 융자가 쌓여 졸업하면 빚더미에 앉는 현실은 영국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다. 이제 다수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되는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임시직 노동을 하고 있다. 캘리니코스는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따른 투쟁 양상의 변화도 보여 준다. 캘리니코스는 저항이 소용 없다는 식으로 대처한 적잖은 교수들이 어떻게 사기저하에 빠졌는지,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와 그리스 학생들은 어떤 저항 잠재력을 보여 줬는지를 다룬다. 지금 한국에는 두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 어떤 측면을 강화시켜야 할지는 너무 명백하다. 이 글은 대학생, 교수, 강사 등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편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M21 편집자]

번역: 차승일 / 교열·감수: 이수현, 최일붕

서론

영국의 대학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물리적 팽창이다. 2004~05년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은 228만 7천540명이었다.1 요즘 영국에서는 18~19세 인구의 약 30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하는데, 1960년대 초에는 겨우 7퍼센트 정도밖에 안 됐다. 대학 교육은 더는 극소수의 특권이 아니다. 비록 육체노동자 가정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대학 진학은 여전히 매우 힘들지만 말이다.2

일부 사람들은 엘리트주의 관점에서 대학의 팽창에 반대하면서, 극작가 존 오즈번의 구호, 즉 “양이 늘수록 질은 떨어진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우파 칼럼니스트 피터 히친스는 지난번 보수당 내각의 총리 존 메이저가 지금의 대학 팽창을 주도했다며 메이저가 “교육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비난한다.3 이와 반대로, 신노동당 정부는 대학 팽창이 사회 정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것은 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서 핵심적인 기본 원칙이다. 교육은 빈곤과 사회적 약자 처지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고 가장 믿을 만한 길이기 때문이다.”4

고등교육 확대는 분명히 고귀한 목표다. 자원만 적절하게 공급된다면 18~30세 인구의 절반 이상에게 대학 교육과 그에 따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정부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엘리트주의자들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현실은 기회 균등과 사회 정의 운운하는 공식 성명서와는 매우 다르다.

영국의 대학들은 사실 대기업의 필요에 맞는 우선순위에 따라 운영된다. 대학은 국내외 기업들의 수익성 유지에 필요한 학술 연구와 숙련 노동자를 공급할 목적으로 구조조정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학문 기관이 아니라 영국 경제를 위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익 센터로 바뀌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등교육의 확대 비용이 저렴해야 하므로 학생 1인당 교육 예산은 삭감되고, 개별 대학 간, 학과 간, 교수 간 경쟁이 심해진다. 장학금이 대출로 바뀌고 등록금이 오른 탓에 많은 학생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장차 임금 노동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더 가난한 집안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