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6호 2018년 7~8월호)

지난 호

쟁점 : 현재의 이슈들

유대인과 반유대주의

박이랑 14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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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누구인가? 오늘날 유대인을 향한 인종차별과 혐오는 어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가? 유대인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 없이 현대 유대인 문제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0세기에 유대인이 겪은 고난과 역경은 이들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차별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그 역사적 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대인의 비밀을 그들의 종교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의 비밀을 현실 속 유대인에서 찾아야 한다.” 유대인이 민족성과 종교를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현실 속 유대인”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유대인이 역사 속에서 어떠한 사회적·경제적 구실을 수행해 왔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이 글은 유대인 문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발전시킨 아브람 레온Abram Leon의 글을 주되게 참고했다. 1918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아브람 레온은 1920년대 후반 가족과 함께 벨기에로 이주했다. 레온은 1940년 나치 치하의 벨기에에서 트로츠키주의 지하 저항조직을 이끌었고, 24세 때 유대인 억압의 성격과 역사에 대한 특출한 분석을 담은 《유대인 문제 -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저술했다. 레온은 1944년 체포돼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처형됐다. 레온의 분석은 유럽 유대인의 역사에 대한 “감성 팔이”적 접근을 거부한다. 또한, 오로지 고질적인 반유대주의의 결과로 인해 “수세기에 걸친 유대인의 고통”이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시온주의의 관점도 뒤엎었다.

중세 초기까지 유대인의 상업적 번성

레온은 광범한 연구를 통해 유대인이라는 사회적 집단이 처음에는 무역업에, 이후에는 고리대금업에 종사한 경제적 구실을 통해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제 활동을 통해 공통된 종교적 신앙과 언어에 기반을 둔 유대인이 인종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은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독특한 집단으로 발전했다. 부가 일차적으로 토지로부터 창출되고, 대다수 인구가 농경을 통해 살아가던 시기에 유대인들은 상인이었다. 이들은 소금, 후추, 사향, 장뇌, 계피, 모피, 노예 등 동방에서 유럽으로 거래되는 사치품들을 교역하며 살았다. 물론 유대인들이 농업에 종사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농경에 종사했을 경우에는 대게 토착 사회에 동화돼 문화적 고유성을 상실했다. 이와 반대로, 무역을 주업으로 삼았던 이들은 고유한 유대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유대인의 특정한 사상과 신앙, 관습이 보존될 수 있었던 물질적 기반이 존재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역사적 실천이 이들의 신앙을 설명하는 것이지, 신앙이 이들의 실천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우선, 유대인이 역사 속에서 수행했던 사회적·경제적 구실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전에 이들이 자신들의 고향이라 부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은 나일강 지역과 유프라테스강 지역을 중간에서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곳에 있다. 이 지역은 정복자들이 지날 수밖에 없는 길목이었고, 이 길을 따라 무역이 번성하고 다양한 사상들이 오갔다. 인구가 밀집해 있었으며 거대한 무역 도시들이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은 주로 언덕과 산악 지대로 이뤄진 척박한 곳이었고, 다양한 집단이 서로 사이좋게 거주할 만큼 여유로운 지역이 아니었다. 이곳의 유대인들은 무역의 통로이던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점차 상인으로 활약하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조건은 유대인의 이주와 그 상업적 성격을 모두 설명해 준다.

이처럼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된 것이 아니다. 이는 신화일 뿐이다. 최근에 이집트에서 발견된 문헌을 보면, 서기 70년 로마가 예루살렘 봉기를 진압하기 500여 년 전에 이미 카이로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고고학 발굴 결과들은 당시 유대인 공동체가 그 지역에 함께 거주하던 여러 종교 공동체 중 일부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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