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6호 2018년 7~8월호)

지난 호

쟁점 : 현재의 이슈들

고전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스탈린주의 비판

김인식 3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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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그 항의 운동,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을 겪으며 많은 청년들이 급진화하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자본주의 체제에 불만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자연히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것이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옛 소련과 중국, 쿠바, 북한 등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변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파는 물론이고 진보·좌파 사이에서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그 사회들을 ― 부정적 이유에서든 긍정적 이유에서든 ―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한편,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북한 문제’가 다시 중요한 정치 주제로 떠올랐다.(사실, ‘북한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남한 정치의 상수로 돼 있었다.) 5월 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 자리에서 문재인은 김정은에게 “한국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인기가 아주 높아졌다”고 말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고모부와 이복형을 처형·암살한 잔인한 독재자였던 김정은이 호감형 지도자로 그려지는 순간이다.

새롭게 정치화하는 새 세대의 일부를 혁명적 정치로 이끌려면, 혁명적 좌파는 ‘북한 문제’에 답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이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인가,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친 계급 분열이 없는 사회인가, 북한은 사회주의인가 등등.

이런 정치 현상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주체주의의 원조인 스탈린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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