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쟁점:운동 내 이슈들

오늘날의 학생운동

정병호 23 29
140 10 8
9/15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그들[NL 계열 학생회들]은 비상학생총회라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학생회라는 대의 제도의 순전한 보조물로만 여겼다. … 또한 NL 계열 활동가들은 점거라는 전투적 투쟁 방법을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해 한사코 피하려 애썼다.
이것은 NL 계열의 인민전선 노선에서 비롯한 개혁주의와 관계 있는 자세다. 좌파가 민주당과 전략적 연합을 추구하는 노선은 좌파가 민주당의 강령과 투쟁 전술 수위를 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효과를 낸다. 이 노선을 따르다 보면 좌파는 민주당 수준으로 매우 말랑말랑해질 수밖에 없다. …
사회 전체적으로도 NL 계열과 그 밖의 다른 주류 진보 세력들의 인민전선 노선 추구로 우리는 이명박의 말기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중운동이 폭발적으로 분출하지 않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바로 진보진영 주류의 선거주의 때문이다. 모든 것이 ‘반MB’ 구호(형식적으로 이해된) 하에 합법적 정권 교체 수단인 내년 총선-대선에 맞춰져 있다. 그 때까지 기다리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야권 연대’만 되면 박근혜도 이길 수 있다니 모든 것은 야권 연대를 위해 희생돼야 한다.
이러한 선거주의는 대중의 자주적 활동을 전혀 고무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자주적 행동이 어느 수위를 넘으면 선거주의자들이 보기에 그것은 괜시리 우파만을 이롭게 하는 몹쓸 일이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중은 수동적이 되도록 고무된다.
게다가 민주당에 대한 폭로와 비판이 없으니 민주당은 운신의 폭이 넓어져 좌파인 척한다. 좌파는 민주당과의 연합을 합리화하기 위해 민주당을 좌파적으로 색칠한다. 대중 속에서 민주당에 대한 환상이 자라난다. 적어도 ‘차악’(한나라당과 박근혜가 최악이라면)으로 취급된다.
다시금 이는 선거주의를 조장한다. ‘까짓것, 민주당이 집권하기만 해봐라. 많은 게 달라질 테니. 적어도 한나라당 정부보다야 낫겠지.’
이런 정서가 대중의 불만과 대중의 행동 사이의 격차를 설명해 준다. 그래서 등록금 투쟁에서도 학생 대중의 불만과 행동(또는 스스로 행동할 자신감) 사이에 결국엔 격차가 있었다.
학생 대중 의식의 이런 모순을 NL계 학생 리더들은 해소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대중 의식의 모순은 대중 자신의 행동으로써만 극복 가능한데, 정확히 이 점을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인 NL 사상은(사실 PD 사상도) 용인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NL계 핵심 리더들이 아닌 NL 주변부의 단순 좌파 민중주의 학생들은 다를 수 있다. 이 점은 그저 말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공동 투쟁을 하는 가운데서만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공동전선 전술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다.[10]

학생과 노동계급

다양한 사회 집단이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이끌 수 있는 집단은 노동계급뿐이다. 노동자들의 노동이 이윤의 원천이므로, 그들이 노동을 중단할 때 이윤 생산도 마비된다. 게다가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 성격 때문에 노동계급은 집단적으로 단결해야 하는 끊임없는 압력에 놓여 있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 집단의 투쟁은 바로 착취에 맞선 노동자 대중 투쟁과 결합될 때 가장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 시기에 노동계급 투쟁에는 개혁주의의 영향력이 비교적 강하다. 개혁주의의 뿌리는 노동계급이 겪는 소외된 노동이다. 노동계급은 노동하면서 생산과정도 생산물도 통제하지 못한다. 착취 경험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에 끊임없는 불만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소외 때문에 평상시에는 체제를 근본에서 변혁할 자신감은 없다. 노동계급은 투쟁 경험을 통해 이런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다.

착취에 맞서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은 대체로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를 중재하는 구실을 하는 노동조합의 상근 간부층[11]의 존재가 일상적 시기에 개혁주의를 강화하는 사회적 기반을 제공한다. 한국 사회도 지난 20여 년간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불완전하지만 점차 이행하면서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를 중재하는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이 형성됐다.[12]

노동계급의 산업 투쟁은 대부분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을 매개로 벌어지므로, 그들의 통제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혁명적으로 분출하면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기 전까지 노동자 투쟁은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의 통제 때문에 달아오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학생들은 노동계급과 다르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생산 관계와 결부된 집단이 아니다. 따라서 착취를 둘러싸고 맺는 관계, 즉 계급 관계 아래 놓여 있지 않다. 물론 예전보다 많은 학생들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고, 이런 학생들의 처지 변화 때문에 노동자들과 연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학생 집단 전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노동계급인 것도 아니다. 학생은 “최종 계급 지위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청년들로 이루어진 일시적 집단”이라고 봐야 한다.[13]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