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쟁점:운동 내 이슈들

오늘날의 학생운동

정병호 23 29
140 8 6
7/15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그런데 일부 대학의 등록금 투쟁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지만 아쉽게도 대다수 대학의 경우는 학교 당국의 등록금 인상을 철회시키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학생운동 지도부의 잘못된 노선이 적잖이 작용했다.

협상 중심의 태도를 취하며 등록금 인상에 합의한 상당수 비운동권 학생회들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높은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평범한 학생들을 전혀 대변하지 않았다. 그런 학생회들이 주도하는 대학에서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는 고작 학교 당국의 등록금 인상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자리이거나, 학생회장들이 학교의 편에서 인상을 합의하는 자리였을 뿐이다.

반면 운동권들은 학교 당국과 등록금 인상에 합의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개 투쟁에 나서기는 했다. 그러나 일부는 그들 자신의 강조점 때문에 학교 당국에 맞서는 투쟁에 힘을 싣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NL 계열이 주도하는 한대련은 등심위의 파행적 운영을 폭로하면서 주로 민주적 등심위 설치를 요구했고, 취업후학자금상환제ICL 개정 등 민주당과의 협력을 통한 각종 “법,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9] 게다가 주류 NL 학생 활동가들은 1년 후 대선과 총선에서 반한나라당 후보들이 당선하는 것을 통해 등록금 문제 해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므로, 당면한 학내 등록금 투쟁에서 투쟁 수위를 ‘지나치게’ 높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한대련이 지도하는 각급 학생회들은 대개 학내에서 등록금 인상에 대한 불만을 전투적 행동으로 조직하는 데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정치’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5월 이전에 학내 등록금 투쟁을 정리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들은 학생총회를 그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회성 집회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물론 학생총회를 통해 평소보다 많은 학생들이 모여 대학 당국에 항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학생총회에 모인 동력을 점거 농성 같은 행동으로 연결시켜야 학교 당국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으려는 투쟁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예컨대 2000년 3월 말 경희대를 시작으로 수도권 대학 열 곳에서 본관 점거 농성이 확산되면서 부분적인 양보를 받아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2000년대 동안 NL 계열 학생회들은 대체로 그런 전투적 전술을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 결과 투쟁들은 학생총회를 정점으로 흐지부지되거나, 소수 지도부의 상징적 점거나 단식 등으로 정리되는 양상이 해마다 반복됐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