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1호 2019년 7~10월호)

지난 호

쟁점:운동 내 이슈들

오늘날의 학생운동

정병호 2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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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는 모처럼 대학생들의 투쟁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시기였다. 동국대·경희대·고려대·서강대·이화여대·인하대 등 여러 대학에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해 1천~3천 명이 참가하는 학생총회가 열렸다. 이런 최근의 대학가 분위기를 두고 <한겨레>는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위축됐던 대학의 집회문화가 최근 들어 등록금 인상을 계기로 눈에 띄게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하고 보도하기도 했다.[1]

학생총회가 올해 투쟁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2000년대 동안 여러 대학에서 학생총회가 성사됐다. 학생총회와 관련해, 올해 투쟁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서울의 여러 대학들에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해 몇 년 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됐고, 학생총회 이후에도 투쟁이 지속됐다는 점일 것이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채플 거부 투쟁을 벌였고, 고려대와 인하대 학생들은 학생총회에서 점거 농성을 결의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이런 투쟁의 압력 때문에 학교 당국들은 장학금 확충이나 학사 경쟁 완화 등(학생들의 성에 차지 않는) 양보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 하순의 시점에서 이들 대학의 투쟁은 대체로 더 지속되지 못하고, 등록금 인상을 철회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은 학생운동이 처한 현주소를 보여 주는 듯하다. 즉, 올해 학생들의 투쟁이 잠재력을 힐끗 보여 줬지만, 다른 한편 약점도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오늘날의 한국 학생운동이 어떤 변화 과정을 겪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1990년대 말의 변화

한국은 전통적으로 학생운동이 강력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의 학생운동은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투쟁을 이끌었다. 비록 당시 투쟁이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투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투쟁을 이끌 잠재력을 가진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촉발하는 데서 학생운동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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