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쟁점:운동 내 이슈들

오늘날의 학생운동

정병호 2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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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공황과 그 후 팍팍해진 학생들의 조건은 학생들을 원자화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만을 키웠다. 그래서 2002년 대학생 의식조사[4]에서 62.9퍼센트의 학생들이 자신의 정치성향을 진보라고 답했으며, 그 해 대선을 앞두고 86퍼센트가 진보적 대통령을 선호했다. 또, 65퍼센트 가량이 미국에 반감을 드러냈고, 그 중 40퍼센트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경제정책”을 이유로 꼽았다. 2003년과 2004년에 실시한 같은 조사[5]에서 대학생들의 진보 성향은 조금 줄어 각각 40.8퍼센트와 44.6퍼센트를 기록했지만, 진보와 중도를 합한 비율은 여전히 80퍼센트 안팎을 기록했다. 2005년의 다른 조사에서는 65.9퍼센트가 미국과 북한이 전쟁하면 북한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대학생 의식의 급진화를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6]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두 여중생이 사망한 사건에 항의한 촛불시위는 이런 누적된 불만이 특정 정세와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위의 여파로 노무현이 당선하자 개혁 기대감에 부푼 학생과 청년들은 그 이듬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고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추진하려 하자, 대거 반전 운동에 참가했다. 학생들은 개혁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런 기대와 열망은 2004년 노무현 탄핵에 반대하는 거대한 대중 시위로도 표현됐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2005년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 열망을 배신하면서부터였다. 2004년에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무로 돌리자, 학생들의 개혁 기대감은 한풀 꺾였다. 그 후에도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법 개악, 한미FTA 체결 등 철저히 개혁 염원을 배신하면서 개혁 염원 대중의 기대감은 점차 냉소와 환멸로 바뀌었다. 그래서 2002년부터 2004년 초까지 학생들이 새롭게 운동에 동참했던 것과 달리, 이 때는 학생들이 쉽사리 행동에 나서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보수화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개혁을 바라던 학생과 청년들은 당시 진보개혁에 대한 확신을 잃고 냉소적이 됐다. 그들 중 일부가 보수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수는 노무현 정부에 실망했지만 진보적 대안에 확신이 없는 데다 그렇다고 우익이 다시 득세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 복잡한 감정 때문에 곤혹스러워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냉소와 환멸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20대의 일부는 민주당과 창조한국당과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다수는 투표에 참가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물론 또 다른 일부는 경제 성장을 통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이명박을 지지했고, 그래서 20대 때문에 이명박이 당선했다는 비난을 뒤집어썼다. 그럼에도 이것이 학생들의 전반적 보수화를 보여 준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조차 학생들은 30퍼센트가 진보, 40퍼센트가 중도이고, 나머지 30퍼센트가 보수 성향을 보이는 가운데 이 비율이 약간씩 변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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