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지난 호

쟁점:운동 내 이슈들

오늘날의 학생운동

정병호 2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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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동안 학생운동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고, 마땅히 기대되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학생운동에 대한 성마르고 일면적인 폄하가 횡행했다. 보수 언론들은 취직 경쟁이나 스펙 경쟁에 몰두하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대세라는 식으로 개인주의를 은근히 부추겼다.[2] 반대로 개혁주의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질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촛불 항쟁 때 20대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비난이 많았다.[3] 비록 공식 학생회 깃발 아래 모이지는 않았지만, 2002년이나 2004년 그리고 2008년 촛불 항쟁에서 대학생 참가가 적잖았는데도 말이다.

물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의 학생운동과 견주면 1990년대 말 이후 학생운동은 조직화 정도나 전투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변화는 1997년 IMF 공황 전후로 노동시장 경쟁이 강화되고 대학의 학사 과정에서 경쟁을 강화하는 조처들이 도입된 것과 관계 있다. 학생들은 전보다 더 심하게 학점 경쟁, 스펙 경쟁의 압력을 받았고, 이 때문에 개인주의도 강화돼 정치 조직, 학생회, 동아리 등 전통적 학생운동의 조직들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게 됐다.

물론 이것이 경제 위기에 따른 자동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경제 위기 직전에 학생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졌고(1995년 전두환·노태우 구속 투쟁, 1996년 등록금과 반정부 투쟁 등), 엄청난 탄압을 받았지만 그 여파가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대중파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과 같은 수준의 급진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소련·동유럽 블록 몰락 이후 그 전까지 이 체제들을 대안으로 여기던 혁명가들 중 상당수가 혁명적 정치에서 이탈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그 여파로 1990년대 동안 운동 내에서 혁명적 이데올로기와 전통이 점차 약화됐고, 한국 사회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의 영향력이 점점 강화됐다. 학생운동 내에서도 혁명적 전통이 약해지면서 기층 조직이 약해졌고,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대학 교육의 신자유주의화와 맞물리면서 학생들은 점차 개인주의화했다.

보수화?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1990년대 말 이래 학생들이 보수화했다는 뜻인가? 물론 학생운동의 조직과 전투성이 약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보수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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